Ⅰ. 서 론
시력은 인간의 주요 감각 중 하나로, 일상생활과 사회적 기능 수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력 손상은 단순한 시각적 불편을 넘어, 보행 곤란, 낙상 위험 증가, 사회적 고립, 삶의 질 저하 등 다양한 신체적·심리적 영향을 초래한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 시력 저하는 기능적 독립성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정신건강 악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며, 특히 고령자 및 만성질환자에서 그 유병률이 높게 나타난다.4)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시각 기능의 저하는 이러한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한 선행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감각 상실을 넘어 삶의 전반적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요인으로 간주된다.5-8) 시력 저하는 낙상에 대한 두려움, 이동성 제한, 타인 의존성 증가로 인한 자기 효능감 저하를 유발하며, 이는 사회적 고립과 우울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시야의 불안정성과 일상생활 수행능력 저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안을 촉발시켜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9-11)
그러나 기존 연구 대부분은 노인, 안과 환자 또는 시각장애 등록자 등 특정 인구집단에 국한되거나, 정신건강 지표 중 우울증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10,12) 또한 시력 상태를 정상과 장애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거나, 경도 시력 저하군을 독립된 분석 집단으로 고려하지 않아 시력 수준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의 정밀한 비교가 어려운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관련 연구가 있었으나, 대부분 우울 위험 중심의 단면적 분석에 그치며, 불안과 같은 정서적 지표나 자살생각 등 고위험군 요소를 포함한 종합적 접근은 드문 실정이다.13) 이러한 연구적 공백은 특히 경도 시력 저하자처럼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되기 쉬운 집단의 심리적 취약성을 간과하게 만들며, 정신건강 중재 대상을 선별하는 공중보건 정책의 정교함에도 제약을 줄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국민건강영양조사(KNHANES) 2022년도 데이터를 활용하여 시력 상태에 따른 우울 및 불안 증상 분포를 파악하고, 인구사회학적 요인을 통제한 다변량 분석을 통해 시력 수준과 정신건강 간의 독립적인 연관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경도 시력 저하 집단의 정신건강 위험을 실증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향후 공중보건 정책 수립에 실질적 근거를 제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Ⅱ. 대상 및 방법
1. 연구 대상 및 방법
본 연구는 질병관리청이 수행한 2022년도 국민건강 영양조사 제9기 제1차년도(KNHANES 2022) 원시자료를 활용하였다.14)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전국 대표성을 갖는 층화 다단계 집락확률추출법을 기반으로 설계된 국가 단위의 조사로, 본 연구에서는 건강설문조사 및 건강검 진조사 데이터를 병합하여 분석에 이용하였다. 대상자 선정은 시력검사 검진에 참여한 대상자로 한정하였다.
2. 변수 정의 및 측정
본 연구에서는 주요 변수로 시력 수준, 우울 및 불안 증상, 자살 생각, 그리고 인구 사회학적 요인을 포함하 였다. 시력 수준은 건강검진조사에서 측정된 양안 교정 시력 중 더 나은 눈의 값을 기준으로 분류하였으며, 세계보건기구(WHO)의 시각장애 분류에 근거하여 세 범주로 구분하였다. 구체적으로, 교정시력이 1.0 이상인 경우 ‘정상 시력’, 0.3 이상 1.0 미만은 ‘경도 시력손상’, 0.3 미만은 ‘저시력’으로 정의하였다.
정신건강과 관련하여 우울 증상은 건강 설문 조사에 포함된 PHQ-9 (Patient Health Questionnaire-9) 항목을 통해 측정하였으며, 총점이 10점 이상인 경우를 ‘중등도 이상 우울 위험군’으로 간주하고, 미만은 ‘정상군’으로 분류하였다.15) 불안 증상은 GAD-7 (Generalized Anxiety Disorder-7) 척도를 활용하여, 총점 10점 이상인 경우 ‘중등도 이상 불안 위험군’, 10점 미만은 ‘정상군’으로 구분하였다.16)
이와 함께, 정신건강 지표와 시력 수준 간의 관련성을 분석함에 있어 주요 공변량으로는 성별(남성/여성), 연령군(40–64세/65세 이상), 교육수준(고졸 미만/고졸 이상), 소득수준(저소득/중·고소득), 그리고 1인 가구 여부(동거/독거)를 포함하였다. 이 변수들은 기존 문헌을 바탕으로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설정되었으며, 로지스틱 회귀 분석 시 혼란변수로서 통 제하였다.
3. 통계 분석
본 연구의 모든 통계분석은 SPSS 27.0(IBM Corp., Armonk, NY, USA)을 이용하였으며, 국민건강영양조사의 복합표본 설계 요소인 층화 변수, 집락 변수, 가중치를 반영하여 분석을 수행하였다.
먼저, 시력 수준에 따른 인구사회학적 특성 분포는 빈도와 가중치를 반영한 백분율로 산출하였고, 집단 간 차이를 검정하기 위해 Rao-Scott 교정이 적용된 카이 제곱 검정을 시행하였다.
이후 시력 수준에 따른 우울(PHQ-9) 및 불안(GAD- 7) 점수의 평균값과 표준오차를 산출하고, 시력 수준 간 평균 차이를 검정하기 위해 복합표본 선형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정신건강 고위험군(우울, 불안, 자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다변량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이때 시력 수준을 주요 독립변수로 설정하고, 성별, 연령군, 교육수준, 소득수준, 1인 가구 여부를 공변량으로 포함하여 교차요인들의 영향을 통제 하였다. 분석 결과는 보정된 오즈비(Adjusted Odds Ratio, OR)와 95% 신뢰구간으로 제시하였으며, 모든 통계적 유의성은 p<0.050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Ⅲ. 결 과
1.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시력 수준 분포
본 연구는 2022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총 519명의 성인 응답자를 대상으로 시력 수준과 인구 사회학적 요인의 관련성을 분석하였다. 시력 수준은 교정 시력에서 정상 시력(88.2%), 경도 시력손상(4.7%), 저시력(7.2%)으로 구분되었다.
성별에 따라 시력 수준의 분포를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정상 시력 비율이 86.2%, 경도 시력손상은 4.6%, 저시력은 9.2%로 나타났으며, 여성의 경우 각각 89.2%, 4.7%, 6.1%로 확인되었다. 성별에 따른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
연령군, 교육 수준, 소득 수준 또한 시력 수준에 따라 분포 차이를 보였으나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반면, 1인 가구 여부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 (p=0.033)가 나타났다. 독거자의 경우 정상 시력 비율이 83.8%로 동거자(89.4%)보다 낮았고, 경도 시력손상(9.8%)과 저시력(6.4%)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았다(Table 1).
2. 시력 수준에 따른 정신건강 고위험군 비율
표 2는 시력수준에 따른 정신건강 지표(중등도 이상 우울 및 불안)의 분포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력 수준에 따라 중등도 이상 정신건강 위험군의 비율에 차이가 나타났다.
먼저 중등도 이상 우울 유병률은 정상 시력군에서 3.9%였으나, 경도 시력손상군에서는 9.7%, 저시력군에서는 10.3%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경계선 유의성을 나타냈으며(p=0.064), 시력 저하가 우울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중등도 이상 불안 유병률은 정상 시력군에서 3.3%였던 반면, 경도 시력손상군에서 19.4%로 현저히 높았으며, 저시력군은 3.4%로 비교적 낮았다.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을 보였으며(p=0.001), 특히 경도 시력 저하와 불안 위험 간의 관련성이 주목된다.
3. 시력수준과 정신건강 지표 총 점수
그림 1에서 시력 수준에 따라 우울(PHQ-9) 및 불안(GAD-7) 점수의 평균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우울점수는 정상 시력군에서 2.26점(±0.19), 경도 손상군에서 2.96점(±0.91), 저시력군에서 4.25점(±1.55)로 시력이 저하될수록 우울 수준이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불안점수는 정상 시력군 1.55점(±0.16), 저시력군 2.63점(±0.78), 경도 시력손상군 3.67점(±1.57)으로, 불안 점수는 경도 시력손상군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 차이는 복합표본 선형회귀분석을 통해 분석한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p>0.050). 이는 표본수의 제한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4. 다변량 로지스틱 회귀분석
다변량 로지스틱 회귀분석 결과, 시력 수준은 정신건강 지표와 유의미한 연관을 보였다. 우울 위험과 관련해서, 저시력군은 정상 시력군 대비 중등도 이상 우울 위험이 약 4.27배 높은 경향을 보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OR=4.27, 95% CI=0.84–21.77, p=0.081). 반면, 불안 위험에 대해서는 경도 시력손상군이 정상 시력군에 비해 중등도 이상 불안 위험이 약 9.54배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OR=9.54, 95% CI=2.01–45.43, p=0.005).
성별, 연령, 교육 수준, 소득 수준, 독거 여부 등의 공변량을 통제한 결과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유지되었으며, 성별은 불안과 경계선 유의성(p=0.053)을 나타냈다. 특히 남성은 여성에 비해 중등도 이상 불안 위험이 낮은 경향을 보였다(OR=0.22, 95% CI=0.05–1.02). 그 외의 공변량(연령군, 교육수준, 소득수준, 독거여부)은 우울 및 불안과 유의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Ⅳ. 고찰 및 결론
본 연구는 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KNHANES) 데이터를 활용하여 시력 수준과 정신건강 지표(우울, 불안)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시력이 저하된 집단일수록 우울 및 불안 증상의 고위험군 비율이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경도 시력 손상군에서 불안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함을 확인하였다(OR=9.54, p=0.005). 저시력군은 우울 위험이 약 4.27배 높게 나타났으나, 통 계적으로는 유의하지 않았다(p=0.081).
이러한 결과는 시력 저하가 정신건강 저하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기존 연구결과들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van der Aa 등2)은 시각장애 노인에서 우울 및 불안의 유병률이 더 높다고 보고하였고, Demmin과 Silverstein7)은 시력 저하가 정신건강 서비스의 미충족(needs unmet)과 연결됨을 지적하였다. 또한 Jackson 등9)은 시력 손상이 차별 경험과 정서적 고립으로 이어져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본 연구에서 경도 시력 손상군의 불안 위험이 저시력 군보다 더 높게 나타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시력 손상이 초기에는 감각적 불편보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에서 오는 심리적 긴장감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경도 시력 손상자는 장애 등록 기준에 미달하여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객관적 장애 수준에 비해 주관적 스트레스가 더 클 수 있다. 반면, 중등도 이상 저시력자는 이미 시력 상실을 수용하거나 일정 부분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아 불안이 일정 수준 완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결과는 시력 저하의 정도에 따라 정신건강 위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특히 경도 시력 손상 상태가 간과되어선 안 되는 독립적인 위험군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정신건강 정책에서는 단순히 법적 장애 등록 여부가 아닌, 시력의 감소 수준과 그에 따른 심리사회적 영향에 기반한 다층적 선별과 개입 전략이 요구된다.
정책적으로는, 지역 보건소 및 1차 의료기관 차원에서의 시력 선별검사와 함께, 경도 시력손상군을 위한 정신건강 스크리닝 체계 구축, 정신건강 서비스와 시각 기능 재활서비스의 연계 프로그램 등이 고려될 수 있다. 특히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이러한 예방적 개입은 향후 의료비용 절감 및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본 연구는 횡단면 설계에 기반하고 있어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 없으며, PHQ-9과 GAD-7과 같은 자가보고형 척도에 의존함으로써 측정 편향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시력 저하의 원인 질환에 따른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고, 스트레스 변인을 분석모델에서 제외한 점 역시 한계로 작용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시력 손상의 임상적 원인, 정서적 조절 변수, 스트레스 반응 등을 포함한 경로 분석을 통해 더욱 정교한 설명모형이 필요할 것 이다.
요약하면, 본 연구는 국민단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도 시력 손상자의 정신건강 위험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정책적 주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향후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전략에는 시력 상태에 따른 정기적 선별과 단계별 정신건강 개입이 포함되어야 하며, 특히 경도 시력 손상자에 대한 조기 개입 체계 확립이 시급하다.